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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대한민국의 탄생- (1)우리는 민주주의란 말을 언제 처음알았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8815&s_no=18815&page=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입니다. 헌법 제1조라 하면 헌법이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 없는 지향을 담은 문장이겠지요.

워낙 자명하다고 여기는지, 이 문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국인이 민주주의를 해방 후 처음 알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였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인들은 해방될 때까지 민주주의란 말을 몰랐을까요? 1948년에 헌법으로 제도화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미국식 민주주의일까요?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어느 한순간 이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민주주의는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과 지난한 대결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미국을 통해 민주주의 제도를 배웠다.”

대다수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선거나 국회의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투표장에 갔고, 정부 수립을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학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 사상을 체험하고, 민주적 제도를 성취하지 못한 채 외부에서 이식된 민주주의였기에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라며, 이승만 독재와 뒤이은 두 차례의 군사 독재를 당연히 있을 법한 시행착오처럼 간주하는 발언조차 나옵니다. 과연 우리 민족이 미국을 통해서, 해방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말이 사실이긴 할까요?

 

 

18831121, 궁궐에서 당시 국왕이던 고종이 홍영식을 만났습니다. 그는 바로 얼마 전 보빙사란 이름의 사절단 부책임자로 미국에 갔다가, 5개월만에 돌아왔습니다. 고종은 홍영식의 노고를 치하한 뒤, 미국 사회와 세계 여러 나라의 실상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눕니다.

그 나라에서는 나랏일을 어떻게 나누어 처리하던가?”

홍영식이 답합니다.

나랏일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처리합니다. 상의해서 법을 만드는 의회가 있는데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서 법을 정한 대로 이를 처리하는 행정부가 있어 대통령이 그 책임을 맡습니다. 사법부가 따로 있어 재판을 통해서 법대로 잘되었는지를 판단합니다.”

대통령이 계속해서 바뀌면 정권이 교체될때마다 큰 폐단이 있을 텐데?”

워싱턴이 나라를 세운 이래 100여 년이 지나도록 화폐 제도가 온전히 유지됩니다. 이 한가지 일만 보더라도 큰 폐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민주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몇 나라나 되며, 유럽에도 민주 국가가 있는가?”

유럽에는 스위스, 프랑스 등의 나라가 있고, 남아메리카에는 멕시코와 페루,칠레 등 모든 나라가 민주국입니다. ”

-홍영식, <<복명문답기(復命問答記)>>

 

1880년대라면 왕의 아들이 당연히 왕위를 물려받고, 왕의 아버지란 이유로 흥선군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어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가 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군주제가 아닌 나라가 많다는 사실, 군주제가 아니면서도 다스림이 법도대로 이루어지고 오히려 더 부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여럿이었지요. 국왕이었던 고종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최한기는 <지구전요(地究戰要)>1857년에 완성하였는데, 137책에 이릅니다. 20여 년에 걸쳐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최한기는 이 책에서 여러 장의 지도를 포함하여 세계 각 지역의 환경과 인간의 삶을 소개하였는데요. 그 일부를 읽으려 합니다.

 

 

미국 새 나라를 세운 뒤 워싱턴을 우두머리로 삼았다. 국왕을 세우지 않고 백니쉐뎐턱 1명을 두어서 전국의 군사, 형벌, 조세, 관리인사를 처리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중요한 일, 외 국과 조약을 맺거나 전쟁하는 일 등은 반드시 의회와 의논한 후에 행하였다.

영국 도성에 의회가 있는데, 상원과 하원으로 이루어졌다. 상원은 작위를 가진 귀족과 성직자 구성되며, 하원은 서민의 추천과 선택으로 뽑힌 재주와 학식이 있는 자들이 모인다. 큰 상벌이나 전쟁 등과 같은 사항은 상원에서 주관하여 의논하고 과세의 증감이나 국고를 주관하는 일은 전부 하원이 주관하여 논의한다. 이 제도는 유럽 여러 나라가 모두 같이 시행하고 영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 최한기<<지구전요(地究戰要)>>

 

 

왕과 가까운 친척이란 이유로, 강화도에서 나무하던 청년을 데려다 왕으로 삼고, 또 왕의 친척이란 이유로 열 살 안팎의 어린아이를 왕으로 세워 놓고 그 아버지가 나랏일을 하도록 만들던 때, 군주제를 당연시하고, 충효를 최고의 윤리로 삼던 유교 사회에서 이런 사실을 알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최한기의 지식이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1857년은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수모를 당한 지 벌써 15년 이상 흐른 때입니다. 중국이 서유럽의 주요 국가와 국교를 맺어 통상하고 교류하였으며, 일본도 개방을 한 때였어요.

그냥 평범하게 생각해도 조선 사람들도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고 중국과 중화 문명 이외에 다른 세계와 다른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1881년 조사 시찰단이 꾸려졌습니다. 일본의 관청과 관련 시설을 시찰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습니다. 시찰단은 자신이 겪은 놀라운 체험들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그 중에 일부만 옮겨 보겠습니다.

 

 

- 일본의 정치 체제는 예부터 군주 독재였으나 1868년 이후 헌법을 대폭 개정해서 점차 군민동치의 기틀을 세워...

-각국의 정치체제는 한결같지 않다. 프랑스는 군민공치, 러시아는 군주 독재다. 영국은 귀족 정치이며, 미국은 공화정치를 한다. 세력이 강하기로는 러시아, 정이 많기로는 미국, 올바르기로는 영국이 앞선다. 일본은 영국의 정치 제도를 옮겼다.

- 민종묵, <<문견사건(問見事件)>>

 

- 근년에 부,현회가 설립되었는데, 일본인들은 미국의 공화 정치를 모방한 것이라 말한다.

- 20세 이상 된 자들을 군이나 구별로 모은 다음, 사리에 가장 밝은 사람의 이름을 써서 상자에 넣는데 이를 투표라 한다. 최다수를 얻은 25세 이상자 4~5인 중에서 부,현의 관리에게 보내 의원을 선발한다. 이들이 투표하여 의장과 부의장을 뽑으며....

-박정양,<<일본 내무성시찰기(日本內武成時察基)>>

 

그들이 일본에서 만난 민권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요? 민권은 인민의 권리를 줄인 말이죠. 그런데 백성은 그저 다스림의 대상이자 깨우침의 대상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민권이란 개념이 있을 리 없겠지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민이 권리의 주체란 인식이 자리잡고, 민권이란 말에 어울리는 정치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조사 시찰단은 그곳에서 군민동치나 군민공치란 말도 만났습니다. 둘 다 임금이 민과 함께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을 만들고 의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때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보고 듣고 배운 것, 그것보다 더욱 강렬하게 체험한 것이 어찌 백면서생의 머릿속 지식으로만 머물렀겠습니까?

 

 

 

 

 

서양에 여러 나라가 있어도 정치는 다만 두 종류가 있으니, 즉 군민동치(君民東置)와 합중공화(合重公和)가 그것인데, 모두가 이를 입헌정체라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군주 및 민주를 막론하고 모두 상하의원을 설치한다. 모든 나랏일은 하원에서 상의한 뒤 상원으로 올리고, 상원에서 상의한 뒤 다시 하원으로 보내는데, 여기서 의결한 것을 왕에게 재가하도록 청하는데 , 아무리 군주가 높다 하더라도 자기 뜻때로 처리할 수 없다.....

-<<한성순보>>, 1884.1.30.

 

민주공화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민주 정치의 여러 형태와 공화국의 운영 방식도 설명되어 있고요.

<<한성순보>>를 편집한 이들은 당장 민주 정치를 하자거나, 더욱이 공화제를 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어요. 글 곳곳에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들도 나오니까요. 그러나 이들은, ‘ 인민이 선출한 자가 나랏일을 맡으니,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고 유능하고 착하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합니다. ‘ 민권이나 군민동치란 말도 긍정적 의미를 담아 여러 번 사용합니다.

 

 

 


 


1880년대 초 조선, 이때 이미 민주와 공화국이란 말을 알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민주공화국이란 국가형태가 군주제를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민권이니 군민동치니 하는말을 실천 목표로 검토하는 사람도 생겨났고요. 1880년대 초 조선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시선으로 세계와 조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던 때였던 것입니다.